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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7. 17世 〉25. <절제공>증가선대부송암공휘정열기적비명(贈嘉善大夫松菴公諱廷烈紀蹟碑銘)
1. 문헌 목록 〉17. 17世 〉27. <절제공>원모정기(遠慕亭記)휘정열(諱廷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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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태사공>감모재기(感慕齋記)휘세문(諱世文)
<태사공후>감모재기(感慕齋記) 傳曰維送死可以當大事豈徒謂一時喪葬殯險之為哉遠而百世俎豆近而四時香火皆出於秉彝之不可泯而前聖之所以節文者也噫惟六世祖諱尚文號聾岩判書八溪公之肯裔兩燹之後不勝風泉之感慨然太息曰當時若無立節之士春秋大義無地可容與伯公諱世文號溪隱季公諱東文幽樓海隅而絕意榮途不事舉業蘊櫝不沽不知不考盤弗諼超然物表只觀物案時終不被異丐想像其高義與三學士易地同轍矣足可以矜式鄉邦而泯沒無傳不仁不明之誅烏得免乎桑海無界闡揚無梯中夜撫心恨徹穹壤此吾先君議官公之所以捲捲于此而詔于不肖者也德裕南福洞即公之祖妣天安全氏妣慶州鄭氏伯公同堂封攸者也於是不量力之叙綿放竭羹墙之淑誠而指倣厦屋古制搆成精密舍扁楣日曰慕齋奚當守塚墓嚴蒸嘗而己潔粢盛於斯而盡洋洋如在之誠聚雲仍於斯而辭怊群穆秩然有序講時禮於斯而砥礪名節卓然立乎世則劉候之義學陳君之義庄無足可尚而斯齋之壽與德裕相經起也何患乎嗣葺之勤慢也哉顧余不肖非敢曰繼述而其在勉之戒哉 壬午四月上澣 六世孫 秉植 撰 감모재기(感慕齋記) 전에 가로되 오직 죽은이를 보낸 것은 아휘써 큰일을 당한 것인데 어찌 한갓 초상 장사 초민연습으로 써 마쳤다 하것는가 멀게는 百세를 석채(釋菜)하고 아깝에는 四시 제사를 보신 것이다. 떳떳한 법을 잃어버리지 아니할 정성에서 나온 것이요 옛 성인이써 제례(制禮)한 바이다. 아. 생각하니 세조 상문(古文)의 호는 농암(聾岩)이요 판서 제공의 어진 후손으로 두번 병화뒤에 흥천(風泉)의 느낌을 이기지 못하여 슬피 탄식하여 가로되 당시에 만일 절의를 세운 선비가 없으면 춘추(春秋)의 큰 뜻을 용남 할 땅이 없을 것이라 하고 백공 휘 세문(世文) 호 계은(溪隱) 제공 휘 동문(東文)으로 더불어 깊숙히 바닷가에 살며 영위할 길을 끊고 과거 공부를 아니하며 싼 포부를 팔지 않고 알리고 아니하며 성내지 않고 초연히 띠끌 세상을 떠나 노닐며 즐기었다. 다만 물안(物案)을 볼때 마침내 다른 빛을 띠고 빌지 아니하니 그 높은 뜻을 상상할때 三학사 로 더불어 같은 날에 말할 수 있을 것이니 족히 향방의 행범이 될 것인데 민물하고 전 한 것이 없으니 밝지 못하고 어질지 못한 죄를 어찌 가히 면하겠는가 천지가 번복되어 열어 드날릴 예제가 없어 가슴에 손언고 생각하니 한이 천지에 사무친다. 이는 우리 선 | 군 의관(議官) 공의 치성한 바로 불초에게 유훈한 일이다. 덕유남복동은 곳 공의 조비천안전씨 비 경주정씨 백공을 한 기술에 봉하고 힘이 부족함을 헤아리지 않고 추모의 정성을 다하여 큰집 옛제도를 모방하여 정사를 얼서 인증방에 감모재라 현판을 걸었다. 어찌 분묘를 지키고 향사하기에 마땅할 따름이겠는가. 이에서 제수를 정결히 숙정하여 성대하게 계신 것 같이 정성을 다하고 이에서 자손이 모여 슬피 여러 선영을 생각하며 질서를 가리며 이에서 시예를 장론하고 명절을 연마하여 높이 세상에선 즉 유후(劉候) 의 옳은 학문과 진군(陳君)의 의장(義庄)을 족히 가히 승상할 것이 없고 이 재각의 수 명이 덕유로 더불어 종시할 것이니 어찌 이어 수즙(修葺)할 것을 근심하겠는가 불가 감히 이어 기술하였다. 말할 수 없고 그저 근면할 것을 경계함. 壬午四月上澣 六세(六世孫) 병식(秉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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